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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0. 원주 치악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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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치악산 기슭에 삶을 일궈가며

♣ 원주 치악산을 다녀와서...

어머니의 손맛 [강원도] 원주 이야기

지금은 강원도 도청소재지가 춘천에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강원도의 중요 도시를 춘천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이 지역을 ‘강원도’라 불리게 된 것은 ‘강릉’의 ‘강’자와 ‘원주’의 ‘원’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는 역사적 유래가 있을 만큼 원주는 매우 중요한 도시였다.

이번 여행길은 고려시대에 처음으로 ‘원주’라고 불리었다는 역사적 기록을 떠올리며, 치악산 입구 ‘황골’이라는 곳에서 5대째 옥수수를 원료로 옛 전통의 엿을 만들어 파는 부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이곳 황골은 태종의 스승인 운곡 ‘원천석’선생이 차좁쌀로 빚은 술을 가져 다 마셨다는 기록이(약600년 전) 있을 만큼 오래전부터 보리로 엿기름을 만들어 먹은 지역이란다. 6,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들은 동네에 엿장수들이 오면 병이나 찌그러진 양은냄비 등을 가져다 엿으로 바꿔 먹던 기억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입안에 녹던 그 달달한 엿의 황홀한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이전부터 엿은 우리네 조상들이 딸을 시집보낼 때 혼수품에 넣어 보냈다고 한다. 시집식구들이 이 엿을 먹는 동안에는 새며느리를 흠잡지 못하게 하려는 마음에서 기인했을까?

그러한 엿을 5대째 이곳에서 만들고 있는 ‘김찬열(59)’, ‘김명자(59)’씨 부부는 찾아간 날도 어김없이 엿을 가마솥에 끓이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전라도가 고향인 아내는 부산에서 남편을 만나 이곳으로 시집을 왔단다.

남편은 이곳의 토박이로 5대째 엿을 만드는 집이어서 어린 시절부터 엿밥을 먹으며 자랐단다. 일제 강점기에 엿을 만드는 것을 금지 했을 때도 굴뚝을 땅 밑으로 만들어 연기가 새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부모님께서 엿을 만들어 내다 팔아 식량을 구해서 살았다고 했다.

이곳은 치악산 부근이라 엿을 골 때 필요한 떨감도 풍족했고 옥수수농사가 많아서 예전부터 이어져 왔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러나 지금 이 지역이 엿을 만드는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알려지기까지는 아내의 힘이 컸단다.

황골엿마을 옥수수엿

“시집을 와서 보니 이 동네에서 우리 집만 엿을 만들고 있었고 엿을 그냥 만들어서 여기저기 다니며 조금씩 팔아 근근이 먹고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어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그래서 고민끝에 원주시 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을 받아 원주의 황토음식으로 인정받았고 여기저기 홍보도 해서 외부에 알려지게 되니까 엿 만드는 집이 차츰 한 두집 늘어나더니 이곳이 ‘황골엿마을’로 알려지게 되었죠. 지금은 열 몇집이나 되요, 어휴 말도 말아요.

전국에 엿을 팔러 안 다닌 곳이 없으니까. 지금은 택배로 다 보내고 직접 사러 오는 분도 계시고 하니 그전 보다 편하긴 하죠. 그렇지만 매일 하루도 쉬지 않고 새벽2시에 일어나서 엿을 끓여야 하니까 결코 쉬운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전통방식으로 옥수수와 쌀, 엿기름만 넣고 만드니까 소문이 나서 주문이 많아 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손이 부족해 도시에서 직장 생활하는 아들을 불러 들였죠. 매일 아침에 물에 담가 불린 쌀과 옥수수를 빻고 엿기름을 넣어 가마솥에 오후 2시쯤 끓이기 시작해서 오후8시에 식힌 다음 새벽 1시쯤 다시 엿기름을 넣고 끓여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엿을 만들며 사는 거죠. 엿을 고느라 잠을 못자서 아이도 하나 밖에 못 만들었어요.” 라며 서글서글한 얼굴에 장난스런 웃음을 띠며 웃는다. 매일 그 힘들고 고된 시간들을 가벼운 농담으로 표현하며 넘길 줄 아는 여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이끌어가는 사람들만이 할수 있는 모습이다.

황골엿마을 옥수수밭

‘놋 양푼에 수수엿을 녹여 먹으며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하면 / 여왕보다 행복하겠다...’ 시인 ‘노천명’은 시‘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에서 읊었지만 어디 엿을 만드는 일이 그리 낭만적이기만 할까? 달콤한 엿을 만드는 일은 결코 달콤하지 만은 않은 것이다.

사실 단 맛은 쓴 맛을 내포하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부부는 결혼 초기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큰 신뢰감이 쌓여 서로가 서로에게 귀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일 년 열두 달 함께 엿을 고아 알맞게 익혀서 만드는 그 엿의 끈적끈적함을 제대로 알기 때문일까? 그들의 삶엔 그들이 매일 만드는 엿처럼 달콤한 향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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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강원도농업기술원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귀포시향토음식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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