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늘은 고향이 아직까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식물로 현재도 지중해 연안의 유럽 혹은 중앙아시아일 것이라는 추측만 있음
○ 학명의 창시자 린네는 이탈리아의 시실리 섬이라 기록했으나 독일의 식물학자 쿤트(Kunth)는 역사에 의거 이집트설을 주장
○ 레겔(Regel)은 서부아시아와 인도설을, 베이커는 이에 반대하였고 러시아의 바빌로브는 종의 다양성을 근거로 중앙아시아설을 제시
○ 발생지설의 또 다른 근거가 되는 언어학적인 면에서도 고대 인도, 아라비아, 그리스어, 슬라브어 등이 서로 연관관계가 없음
* 식물의 발생지를 추정할 때 근연종과 야생종의 유무 이외에도 언어학적인 유사성이 중요한 단서가 되나 마늘에는 유사성이 발견 되지 않았음
□ 태어난 곳은 불분명하지만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부터 널리 이용되어왔던 사실은 역사에 분명히 기록
○ BC 2,500년 전 축조된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면에 건설에 동원된 노무자에게 준 마늘과 양파를 기록한 벽화가 확인
*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피라미드 벽면에서 발견하여 기록
○ 비슷한 시기의 고대 바빌로니아 유물 중 점토판에서 40부셀의 마늘을 주문했다는 문구가 고고학자들에 의해 확인
○ 기원전 550년 경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충치로 인한 통증 제거, 동물에게 물린 상처나 기생충 구제, 심장병 회복에 처방
각종 암에 효과가 있다는 히포크라테스 수프
▷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레테스가 암 치료 식단으로 이용했다는 것에서 유래하며, 1928년 독일의 거슨 박사에 의해 재발견(’13.3.25, MBC 생방송 오늘 아침)
- 감자(400g), 양파(중간크기 2개), 샐러리(중간크기 1뿌리), 토마토 200~400g, 마늘 한 줌이 필요하며, 채소를 껍질째 깍둑썰기 한 후 토마토, 양파, 감자의 순서로 스테인리스나 유리냄비에 앉혀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익혀 죽처럼 만들어 먹음
○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 선수들이나 검투사들도 마늘을 씹었고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 시 병사들에게 영양식으로 지급
○ 로마시대에는 군인과 항해사에게 강장제로 마늘을 공급했으며 네로황제도 정기적으로 섭취했다고 주치의 디오스코리데스가 기록
- 유명한 박물학자이자 군인인 플리니우스(Pliny)도 그의 저서 박물지에 치질부터 뱀에 물린 데까지 61가지 효용을 수록
근대 약학의 선구자, 디오스코리데스
▷ 기원전 1세기경의 고대 로마에 살았던 디오스코리데스는 약물지라는 책을 통해 허브 600종, 동물성 약제 35종, 광물 90종로 만든 1,000여 가지의 약제를 정리
- ‘약물에 대하여
- 의학도들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듯이 약학도들은 디오스코리데스 선서를 하는 것이 전통
□ 기록에 의하면 동양에도 자생적인 마늘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의 마늘은 한나라 때 장건에 의해 서역에서 도입
○ 중국 진(晋)나라의 장화(張華)는 저서 박물지에 원래 마늘(蒜)이 있었으나 서역에서 비슷하면서도 훨씬 큰 것이 들어왔다고 기록
- 한나라 때(BC 126년) 장건이 서역에서 도입하였는데 커서 대산(大蒜) 또는 오랑캐의 것이라 호산(胡蒜)이라 부른다고 하였음
* 신농본초경집주(AD 500년)에는 ‘요즘 사람들이 호산을 대산, 산을 소산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어 재배가 일반화되었음이 짐작
○ 우리나라에는 중국과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해 볼 때 기원전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정
- 삼국사기에 ‘입추후 해일 산원제후농’(立秋後亥日蒜園祭後農)'이란 기록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에 이미 재배된 것으로 추정
○ 일본에도 비슷한 시기에 우리나라를 통해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본서기(720년), 본초화명(918) 등의 문헌에서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