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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작물 이야기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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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3. 배추 독립 투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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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배추 독립을 이뤄낸 마에스트로(거장, 巨匠), 우장춘

□ 19세기까지 배추는 김치의 주재료는 아니었으나 채소재배와 육종 기술이 발달한 20세기에 들어 주재료로서 자리잡음

○ 1906년 권업모범장(농촌진흥청의 전신)은 우리 농업사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

- 재래종(개성, 서울)배추 뿐 아니라 중국의 우수품종도 도입하여 채종, 육종, 재배 등의 연구가 수행

- 조선총독부에서 재래종에 비해 수량 등이 우수한 중국계배추 (호(胡)배추)를 장려하면서 1930년대 결구배추가 전국으로 확대

* 토종배추는 맛이 좋으나 수량이 적고, 추위에 약해 가격이 비쌀 수 밖에 없어 점차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재배가 감소됨

우장춘 박사
<‘우장춘 박사’>

□ 일제강점기 이후 배추에 대한 전문 인력, 시설, 종자 등에 대해 기반이 없던 우리나라에 육종의 기틀을 확립한 사람이 우장춘

○ 일본의 철수로 위기에 처한 우리 채소산업을 되살리기 위해 우장춘박사는 재래종과 중국배추의 장점을 갖춘 원예 1, 2호를 육종

- 일본에 남은 가족을 위해 지원한 금액을 전액 종자, 농기구, 기계 등을 사는데 투자할 정도로 열정을 쏟으며 채소 육종의 기틀을 확립

* 1955년부터 우수 품종을 개발하면서 세계 최고의 무․배추 육종기술을 확보한 결과, 2012년 Codex에서 우리배추로 ‘Kimchi cabbage’로 명명하는 쾌거를 이룩

우리 배추 ‘원예 1, 2호’
<우리 배추 ‘원예 1,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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