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어찜 레시피
♣ 재료 준비
• 홍어를 손바닥 크기 정도로 토막 내서 채반에 담아 햇볕에 살짝 말린다. 소금으로 간을 하지 않는다.
• 석이버섯은 더운 물에 불려 이끼가 낀 뒷면을 손으로 비벼 씻고 돌돌 말아 채 썬다.
• 달걀지단은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해서 기름을 두른 팬에 부친 후 채 썬다.
• 실고추는 적당한 길이로 자르고, 통깨를 준비 한다.
♣ 양념
• 초고추장(고추장. 감식초, 매실액. 마늘즙, 사과즙)
♣ 만드는 방법
1. 찜 솔에 반 건조시킨 홍어를 넣고 그 위에 석이버섯 채, 황백 달걀지단 채, 파 채, 실고추, 통깨를 고명으로 올린다.
2. 한 김 오른 찜통에 넣고 홍어를 찐다.
3. 다 익으면 접시에 담고 초고추장을 함께 곁들인다.
♣ 종가에서 자라 더 큰 종가로 시집와 종부가 되다
김호진 종부는 의성 김씨 봉화 해저리 팔오헌 종가에서 왔다. 팔오헌 김성구는 봉화 해저리를 대표하는 인물로 조선 후기 정치가요, 학자다. 종가에서 자라 더 큰 종가로 시집와 종부가 됐다. 갈암 종택이 있는 영덕은 대게와 문어의 주산지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대게와 문어를 사용해서 만든 문어소고기대게탕은 갈암 종가의 대표음식이다. 문어숙회는 끓는 물에 삶지 않고 냄비 밑에 깐 양파에서 나오는 물과 단맛을 이용해서 익히는 찜에 가깝다. 갈암 종가에서는 문어숙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먹지 않고 간장과 식초를 넣어 만든 초간장에 찍어 먹는다.
사골육수로 담근 김치 역시 갈암종가의 자랑이다. 종부의 시할머니(경북 안동, 내앞 마을이 친정)는 사골 육수를 우려내고 남은 뼈를 버리지 않고 장독 밑에 깔고 김치를 담아 보관했다. 그러면 김치가 신기하게도 알맞고 적당히 익는다.
갈암 종택이 경북 청송군 진보면에 있을 때부터 해 먹었던 음식이다. 시할머니는 장을 담글 때도 장독 밑에 마른 다시마를 깔고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부어 장을 담갔다고 한다. 종부가 개발한 참외백김치도 빼놓을 수 없다.
무와 배를 갈아 물만 짜내어 국물을 만든 뒤 소금에 절인 배춧잎 한 켜, 참외 한켜씩 겹쳐서 만든다. 먹을 때 실고추와 석이버섯을 뿌린다. 여름에 백김치를 먹을 때 석류 알갱이를 띄워 붉은 색 고명으로 사용한다.
매콤한 맛을 내려면 청양고추를 반 잘라서 베보자기에 넣어 백김치국물에 담가 놓는다. 종부가 시집 와 대구보푸름를 만드는데, 보푸름이 곱게 나오지 않자, 친정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 말씀 대로 대구포를 찜통에 넣고 찌니, 보푸름이 보드랍게 실 같이 나왔다고 한다. 종가의 음식은 또 다른 종가를 만나 더욱 풍성하고 풍부해진다.
♣ 영남을 대표하는 최고 학자 집안
갈암 이현일(1627~1704)은 17세기 중후반 퇴계 이황-학봉 김성일-경당 장흥효-갈암 이현일로 이어지는 퇴계 학맥을 잇는 당시 영남지방을 대표하는 최고 학자였다.
갈암은‘퇴계학’의 수호에 누구보다 적극적이었던 인물로, 율곡의 학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한편 산림정치가로서 강화된 위상을 바탕으로 영남 사람을 대대적으로 규합하여 갈암학단을 만들었다.
17세기 후반부터 본격화된 갈암학단의 형성과 확대는‘학봉-경당 학맥’의 주도권 강화라는 측면을 넘어 영남학파의 통합이라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갈암은 영해부 인량에서 태어났다. 재령 이씨로 석계 이시명과 여중군자로 불리는 장계향의 셋째 아들이다.
갈암의 어머니 장계향은『음식디미방』(1670)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음식디미방』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여성이 쓴 조리서이며, 한글로 쓴 최초의 조리서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전해으거나 장씨 부인이 스스로 개발한 음식 등 양반가에서 먹는 각종 특별한 음식들의 조리법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갈암 종가의 인량 고택(시도기념물 제84호)은 넓은 평야 끝 낮은 산자락에 위치해 있다.
인근의 임하댐 수몰지역에서 이전해 온 문화재다. 인량마을은 8대성씨 12종가가 모여 있어 문화재로 보호되고 있는 지역이다. 갈암 고택은 영남 북부지역의 총의병 대장이었던 선생의 11대손인 이수악이 항일 구국운동의 거점으로 활용하기도 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