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도밭에서 생산과 가공을 함께
우리나라에서 와인을 생산하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포도 종류가 다를 뿐만 아니라 와인 생산에 필요한 기술도 널리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산 생식용 포도로 토종 와인을 생산하기로 한 쥬네뜨 와인 김향순 대표의 결단은 많은 시사점을 보여준다. 2008년에 처음 와인을 출시해 꾸준히 와인을 출시하는 한편, 넓은 농토를 이용해 체험을 병행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6차 산업의 좋은 예다.
김향순 대표가 원래 지었던 농사는 사과농사였다. 1998년 6,000평이 넘는 사과밭 중 1,500평가량을 포도밭으로 전환하면서 포도 가공식품에 대해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포도밭 전환과 함께 신청한 ‘농촌여성 일감 갖기 사업장’ 선정이 1999년 이루어지면서 처음 시작한 것은 포도즙 생산이었다.
일교차가 큰 곳에서 자란 만큼 당도가 높은 단산포도로 즙을 만들어 납품을 진행했다. 하지만 출하시기를 조절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면서 다른 상품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음료시장은 유행을 많이 타기 때문에 포도즙만 가지고는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포화상태라서 판로 개척도 어려웠고요.
여기에 포도즙은 생산하고 나서 1년이 지나면 무조건 폐기를 해야 했거든요. 보관이 가능하고, 출하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상품이 와인이라고 생각하고 약 6년 동안 와인공부를 했지요.”
당시 우리나라 전통주를 생산하는 배상면주가에서 와인 제조에 대해 배우고 온 농업기술센터 배금미 계장과 함께 와인을 담가보기 시작했다.
농업기술센터에서 열통의 와인을 담고 꾸준히 상태를 확인한 결과, 와인이 놓인 위치에 따라 맛도 빛깔도 다르게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햇빛에 노출되어 있던 입구 쪽의 와인과 맨 안쪽 그늘에 놓인 와인의 상태가 달랐던 것이다.
결국 김 대표는 배상면주가에서 기초반과 심화반 교육을 받은 뒤 농촌진흥청에 제안서를 보내 와인제조 교육과정을 열어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학생들이 직접 커리큘럼을 짜면서 약 1년간의 주류제조심화과정에 참여했고,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지역특산주 면허(구 농민주 면허)를 받는데도 성공했다. “와인 공부를 하면서 농촌진흥청의 정석태 박사님께도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어요.
지역특산주 면허를 받는 과정이 힘들었어요. 관련해서 아는 것도 없었고 알려줄 사람도 없었거든요. 공부를 하면서 인연이 된 분들에게 도움을 받고 서로 아는 것을 공유하면서 2007년도에 주류제조 면허를 받게 되었어요. 그리고 2008년에 첫 와인을 출시하게 되었죠.”
♣ 지역특산주 소규모 제조의 도전과 어려움
지역특산주 제조에서 원료는 중요한 요건이다. 본인이 직접 농사를 짓거나 제조시설이 위치한 지역의 원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쥬네뜨 와이너리는 원물인 포도를 100% 자가 공급하고 있다. 덕분에 원료비 부담이 줄어 사업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현재 쥬네뜨 와인에서는 1년에 3만 병까지 생산이 가능하지만, 생산량은 그 10분의 1인 3,000병가량으로 제한하고 있다.
판로 확대와 일손 확보가 어려운 것도 이유지만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싶지 않은 이유가 더 크다. 단산포도는 출하 전 공정이 다른 지역 포도와는 달라 숙달된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쥬네뜨 와인의 대표이긴 하지만, 주 업무는 포도 농사에요. 단산포도는 과실이 달리기 시작하면 포도 줄기 안쪽의 자잘한 포도들을 한번 솎아내는 작업이 필요해요. 햇빛을 잘 받지 못해 익지 않은 안쪽의 포도들이 겉면의 잘 익어가는 포도까지 터지게 만들거든요.
6월 한 달 동안은 꼼짝없이 포도를 솎아내는 작업을 해야 하죠. 9월에는 포도 수확으로 바쁘고요. 이렇게 일일이 손길을 준 단산포도에 캠벨 품종 포도와 산머루를 섞어 와인을 만듭니다. 그리고 약 2년가량 숙성시킨 후 병입하고 나서도 6개월가량 더 숙성해 시장에 출하하고 있어요.”
대량생산이 어렵다 보니 아쉬운 점도 많다. 필요한 와인병과 코르크를 소량구매하다 보니 대량구매에 비해 높은 금액에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이다. 또한 지역특산주 면허의 장점 중 하나인 온라인 판매도 엄두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인터넷 판매도 서툴지만, 주류 온라인 판매에 꼭 필요한 미성년자 제한 시스템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지 않다. 1년에 3,000병을 생산하는 규모로는 인터넷 판매를 해도 남는 것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저는 와인 생산과 포도농사를 함께 하기 때문에 아예 지역특산주만 법인으로 크게 키운 분들과 비교했을 때 매출 규모의 차이가 커요.
그런데 세무적인 부분들은 동일하게 적용되어서 힘든 부분이 있어요. 소규모 업체에 대한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다행히 올해부터는 며느리가 일을 도와주기로 해서 앞으로 쥬네뜨 와인을 좀 더 성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농장을 이용한 농촌 체험으로 큰 그림을 그리다
와인 제조와 농사로 365일 바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진행하는 일이 있으니 바로 쥬네뜨 와인의 농촌 체험이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이 키워준 옥수수밭에서의 미션 체험, 9월에 진행하는 포도 따기 체험, 1년 내내 체험할 수 있는 나만의 와인 만들기, 와인에 숙성시킨 삼겹살 맛보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바쁜 중에도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이 힘들지만 사람들에게 쥬네뜨 와인을 알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나만의 와인 만들기’ 체험은 가족들이 함께 하기 좋아요. 하루 전에만 예약하면 체험이 가능해요.
함께 와인을 담그고 체험하면서 찍은 사진이나 평소 좋아하시는 사진으로 와인 라벨을 만들어 드려요. 그리고 와인병에 담아서 포장해 드리죠. 멸균이나 질소주입을 하지 않은 와인이라 최대한 빨리 드셔야 해서 와인은 마시고 병만 기념으로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또한 쥬네뜨 와인이 소수서원과 부석사를 이어주는 길목에 위치하다 보니 영주 관광을 온 여행객들이 간판을 보고 우연히 들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김 대표는 바쁜 농사일을 잠시 내려놓고 여행객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비록 예약을 하지는 않았지만 쥬네뜨 와인에 관심을 갖고 방문한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쥬네뜨 와인은 생식용 포도로 와인을 만들다 보니 포도 따기와 포도즙 맛보기 등도 함께 체험할 수 있어요. 농장에서의 즐거운 체험이 와인과 포도상품 주문으로 이어지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에요.”
여성으로서 사업체를 운영한다는 건 여전히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게다가 농사와 제조업을 함께 하다 보니 김 대표는 사업을 진행하는 중간 중간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겪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 여성농업인, 여성창업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할 수 있는 일이 농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고 관련된 체험 프로그램이나 제품 생산을 하는 것은 무척 힘들어요. 하지만 여성들이 농업 분야에서 창업을 하면 섬세함이나 아이디어적인 부분에서나 분명 장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젊은 여성들은 무척 똑똑하기 때문에 1인 농업기업을 창업해도 잘할 것 같아요. 작목뿐만 아니라 패키지 디자인이나 마케팅 등을 폭넓게 공부하면 분명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거예요. 여성창업농들, 언제나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