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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9. 조갯국,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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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잃어버린 조개를 찾아서

조개는 조개섬에서 많이 났다. 얼마 전 이 조개섬이 어디인가로 논란이 일었다. 태화강에는 여러 곳의 삼각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삼각주는 강의 물이 바다로 들어갈 때 운반하던 토사를 하구나 그 주변에 쌓으면서 생긴 것이다.

부산의 낙동강, 하동의 섬진강, 포항의 형산강이 바다와 닿아 있으면서 모래섬을 만들었다. 세계적으로는 이집트의 나일강의 비옥한 삼각주가 있다. 삼각주는 농작물을 경작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일반적으로 조개섬은 태화강 하구를 가로지르는 명촌교 아래, 돋질산 북쪽 끝자락의 동쪽 방향에 있는 섬이라고 알려져 있다. 조개섬은 한국비료공장이 생기던 1965년 말에서 1966년 초쯤 사라졌다.

그러나 조개섬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조개섬의 음식이 있기 때문이다. 울산의 태화강도 마찬가지 였다. 태화강은 울산 사람들에게 어머니와 같은 강이었다. 태화강에 있었던 삼각주들에서 나는 다양한 작물들로 울산의 밥상은 풍성해졌다.

울산 사는 사람들은 흉년이 되면 어디로 오느냐. 전부 바구니를 들고 도보로 걸어가지고 태화강 하구로 옵니다. 그러면 이게 해초고 뭐고 무진장하게 많아 대도섬 주위에서 무진장하게 산물이 나오는 거죠.96)

태화강은 흉년에도 먹을 곳이 있는 곳이었다. 조개섬에서는 다양한 조개가 많이 났다. 1933년『울산군향토지』에서는 울산과 하상에서 조개가 생산된다고 했다.97) 울산 사람들에게 조개는 재첩이다.

울산 사람들에게 조개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들은 입을 모아 ‘가막조개’이라고 한다. 가막조개는 모래가 많은 진흙 바닥에 서식하는 백합목 재첩과의 민물조개를 말한다. 한글학자 최현배가 그리워한 조개섬의 조갯국은 재첩국이다.

태화강 하류는 바닥이 진흙 펄이라서 재첩의 색깔도 칠흑색이다. 상류 모래톱에서는 황갈색의 재첩이 잡힌다.98)

조개는 배를 타고 가서 잡거나 태화강 근처의 경우에는 직접 잡았다. 아래 사진은 그 시절 조개를 잡는 모습이다.99)

태화강 하류의 조개잡이
▲ 태화강 하류의 조개잡이

태화나루 주변 사람들은 작은 쪽배, 즉 보트 같은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내황 앞 조개섬에 가서 재첩을 잡아 맑은 강물에 살며시 흔들어 일면 고기들이 모여들고, 나루터 강가에는 조개껍질이 무덤 같이 쌓이고 길가에도 수두룩했다.100)

태화나루 주변의 조개잡이
▲ 태화나루 주변의 조개잡이

위의 사진을 보면 두 여인이 강가에서 큰 채를 이용해 조개를 잡고 있다. 조개잡이 도구는 조개를 뜨는 큰 채와 잡은 조개를 잡는 그릇뿐이다. 조개가 흔해서 한번 나가면 많이 잡을 수 있었다. 먹을 것이 귀했던 시대 였지만 조개만은 흔했다. 조개섬에서 조개를 캐왔던 이들은 물이 빠진 섬에서 조개를 한 가마니씩 이고 왔던 기억을 풀어내고 있다.

조개섬 거기가 정동 쪽이라서 그런지 조개 잡으러 가면 해를 안고 가거든요. 또 오면 해를 안고 오거든요. 그러면 얼굴이 익어가 발갛다고요. 한자루씩 이고 오거든요. 요즘처럼 수레 같은거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꼭 이고 지고 와야 되거든. 물때를 모르면 조개를 캐러 갈 수가 없어요. 와 글냐면 조금이 있거든. 조금이 팔일하고 이십삼일이거든. 그러니까 물이 하나도 안 나는 거예요. 팔일 날에는 물이 안 나고 구일되면 아주 새벽에 나고 또 십일 되면 조금 늦게 나고. 이런 식으로 물이 오랫동안 나는 날도 있고 아닌 날도 있고 그라거든.

그러몬 인자 가서도 물이 차있으면 들어가질 못해요. 앉아 있다가 물때를 보고 가야지 물때 모르고 그냥가면 캐지도 못해요. 또 캐다가 물이 들어올라면 방울이 푹푹 진다고 빠끔빠금하니 물방울이 지면 물이 들어오는 거니까 빨리 나와야됩니다. 안나오면 거기서 떠내려가 죽지. 잠깐 물 나는 시간만 캐가 빨리 나와야지. 그래 두어 시간씩 일하고.101)

조개는 흔했다. 조개가 많다고 해서 끝없이 캘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울산 사람들은 조개를 캐면서 욕심을 버리는 법을 배웠다. 태화강의 물때와 채취한 조개를 집으로 가져가는 일이 어려웠다. 조개는 3월 초부터 6월초 까지 생산 가능했다.

조개는 ‘조금(潮-)’에 캤다. 조금은 조수가 가장 낮은 때를 이르는 말로 대개 매월 음력 7, 8일과 22, 23일에 있다. 울산의 조금은 8일과 23일이었다. 조개를 캐는 재미에 빠지거나 욕심을 부리다보면 물이 차서 큰일을 당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다른 하나는 채취한 조개를 옮길 일이 큰 문제 였다. 캔 조개를 이고 지고 올 수밖에 없었다. 한 사람이 들고 올 만큼만 캐야 했다. 그러니 최대 한 가마니를 넘을수 없었다. 달리 사람의 경우 조개섬에서 집까지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이고 지고 한 시간을 걸어야 하니 적당히 캐 와야 했다. 태화강 조개 앞에서는 욕심을 내려놓는 지혜가 필요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조갯국은 섬진강 재첩국이다. 언양불고기처럼 섬진강 재첩도 고유명사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그래서 재첩국을 떠올리면 남도의 어느 지역을 연상시키기 쉽다. 태화강에 재첩이라니 낯설기 짝이 없다. 울산이 아닌 전혀 낯선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사는 울산은 분명 이전과 다르다.

1962년을 기점으로 울산은 큰 변화를 겪는다.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 변화는 음식에서 가장 먼저 나타난다. 당장 채소를 심고 키우던 땅을 잃었으니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대자동차인가 삼양사 들어오면서 조개섬이 거기로 들어가 뻐리니까 못 다녔지. 재첩 더 이상 캐먹을 수가 없었다꼬. 그래가 우리는 그 공단들 들어오는 거 별로 안 좋아했자 당장 우리한테 좋은 것은 없고 조개들 못 캐먹는데 좋을리가 없지.

김득선(여, 1931년생), 달동출신.102)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것은 당연한 삶의 이치 이다. 그러나 울산 사람들이 ‘얻은 것’ 즉 공업도시로서의 울산은 울산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들은 당장 조개섬이 공장에 편입되면서 지천으로 널려 있던 조개를 더 이상 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아쉬움은 꽤 깊은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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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부산광역시농업기술센터 •우리음식연구회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제주한라대학교 호텔조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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