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의 계층별 삼시 세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달리의 삶을 상층, 중층, 하층으로 애써 분류해 두었지만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88) 상층의 밥상이라고 해서 고기나 생선이 올랐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중층의 저녁 밥상에 오른 멸치조림이 유일하다. 현재의 시선에서 계층별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부실하기 짝이 없는 하층의 밥상이 안쓰럽다. 음식의 양과 노동량이 반비례했을 하층민의 상황을 짐작하게 된다. 달리 사람들의 식단을 보다보면 달리의 지리적 특성이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울산이 바닷가이고 달리가 태화강 옆 마을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정도이다.
농촌인 동시에 어촌이기도 했던 달리의 일상적인 식단이었을까라는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조사 시기가 여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달리 사람들은 태화강에서 나는 다양한 해산물을 먹고 살았다. 특히 조개류를 많이 먹었다.
조개류는 달리 사람들의 주식이라고 할 정도의 주요한 식량자원이었다. 삶아도 먹고, 수제비도 해 먹고, 국도 끓여 먹었다. 먹을거리가 풍부하지 않았던 당시에 이러한 생활은 달리 사람들의 또하나의 생업이었다.89)
그뿐만 아니라 태화강의 해초도 밥상에 자주 올랐다. 이상하게 달리의 밥상에는 거의 해초가 오르지 않았다. 해초는 다시마가 유일했다. 조사를 하던 1936년 태화강은 홍수로 접근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1936년 8월 2일에는 비가 많이 와서 태화강 제방이 유실되면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볼 때 달리의 여름 밥상이 조금은 특수한 상황에 처한 것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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