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이 전복을 생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뛰어난 가공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시가 한 편 있다. 바로 정약용의 시이다. 그는 울산의 감복을 시의 한구절로 남겨 놓았다.79)
눈 내리는 밤 내각에 음식을 내리시어 삼가 은례를 기술하다
구중 궁문 잠긴 뒤에 앉아서 읊조릴 제
밤은 깊어 누각 소리 들려오지 않는데
바람이 잔 창 밖에 눈송이 펄펄 날리어
달빛 숨은 대궐 숲 하얀 옥이 깔리니
이 몸이 깊은 산속 들어왔나 착각하며
숲 속의 싸늘한 방 등잔불만 의지했네
내각의 아전이 와서 기쁜 소식 전하는데
임금 하사 진수성찬 열 사람이 떠멨다나
행여나 늦을세라 바쁘게 뛰어가니
날 기다리던 제공들 그제서야 잔 돌리네
빨간 대추 송편은 꿀로 떡소 넣었다면
푸른 우엉 잘게 씰어 감자와 함께 삶았네
은풍에서 올린 준시 뽀얗게 서리 앉았고
울산에서 나온 감복 환하게 글자 비추네 / 蔚山甘鰒照字明
멧돼지 배를 가르고 곰고기를 구웠다면
넙치 말린 포에다가 고등어도 겸하였는데
여러 가지 선미를 다 말하기 어렵구나.
청빈한 선비 입이 황홀하여 놀랄 따름
궁중에서 음식 하사 그 유례가 극히 적어
척리 훈가 그들만이 영광 받아 뽐냈는데
〈중략〉
오늘의 이 술상은 무슨 말로 형용하리
맹상군이 먹여 살린 삼천 명의 식객들은
개도둑에 닭울음 한두 사람 그뿐이라
제공이여 이를 생각 단단히 경계삼아
크고 좋은 계책 올려 충성을 다해 보세
임금이 주최한 연회에 울산 감복이 올라 있다. 정약용은 감복을 불빛에 비춰 글씨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얇다고 서술하고 있다. 감복은 지금으로 치면 양념 전복에 해당한다. 감복의 요리법은 간단하다.
① 건복을 물에 불린다.
② ①을 사탕가루나 기름, 간장 등에 잰다.
재다는 ‘고기 따위의 음식을 양념하여 그릇에 차곡차곡 담아 두다’는 말이다. 또 사탕가루는 설탕을 이야기하는데, 이 때문에 감복이라고 부르는 듯하다. 양념에 잰 감복을 어떤 방법으로 먹었는지는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다. 정확한 방법은 알 수 없다.
울산 전복의 위상이 수백 년 동안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1809년『규합총서』와 1925년『해동죽지』에서도 감복을 울산의 음식으로 꼽는다. 이처럼 18세기 이후 전복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주목하면 울산 전복은 사대부의 밥상에도 올랐다. 지금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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