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전복은 전국 최고였다.75) 전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하게 가공되었다. 전복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다.76)
크지 않은 전복을 두고 한 작업 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을 정도로 세밀한 전복 건조 방법이다. 작은 전복을 얇게 저미고, 두드리고, 누르고 있다. 이렇게 공이 들어간 만큼 전복 가격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울산의 전복을 울산 사람들은 어떻게 해 먹었을까. 아쉽게도 이와 관련한 자료를 찾기는 쉽지 않다. 다만 아래의 글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을 듯하다.
갓장이(갓 만드는 사람) 헌 갓 쓰고, 무당 남 빌어 굿하는 격으로 자신이 잡은 물고기, 소라, 전복을 못 먹는것이 바닷가 사람들의 신세였다. 그것을 팔아야 모자란 양식을 구할 수 있는지라 생선 한 손 먹기 어려운 것이다.77)
울산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에서 나는 최고의 전복을 먹어볼 기회를 가졌을 것일까. 아무래도 울산 사람들이 전복을 만들어 먹는 문화를 만들어내기는 어려웠을 듯하다. 수탈과 고통의 다른 이름이기도 한 진상에 울산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짐작된다.
그렇다면 전국에서 최고로 꼽혔던 울산 전복은 어디에서 어떻게 소비되었을까. 다행스럽게도 다양한 시대, 계층의 서술자가 전복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아래와 같이 전복 요리에 대한 기록이 적잖다. 상당수가 18세기 이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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