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찰음식 유래
사찰음식의 시초는 걸식으로 생산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세속인들이 주는 음식에 의지에 생존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루 한 번 다같이 마을에 들어가 줄을 지어 걷거나 밥을 얻었습니다. 주어지는 음식에 대한 선택권이 없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그런 날에는 굶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걸식을 통해 주는 대로 먹던 시기에 사찰음식이라는 것이 생겨나기 어려웠습니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진 초기에는 국가차원에서 사찰을 짓고, 왕실과 귀족들이 거대한 토지와 재물을 기증함으로써 탁발하지 않아도 생활이 가능하게 되었고, 사찰에 기증된 토지에서 스스로 작물을 재배하여 조리해서 먹게 되면서 특유의 사찰음식이 발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달마대사와 선문답을 나눈 것으로 유명한 양나라 무제(502~557)가 단주육문(斷酒肉文) 4편을 지어 수행자들의 육식을 엄금한 이후부터 점차 채소나 두부, 버섯을 재료로한 사찰음식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순수 채식의 사찰음식 문화는 아니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초기 출가자들이 거친 음식을 너무 고통스러워 할 뿐 아니라 병이 나기도 하여 그 치유를 목적으로 어육을 잠정적으로 허락하기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보다는 조금 완화된 불살생계율형태를 볼 수 있으며 불교가 전래된 뒤 국가가 공식적으로 이를 승인하고 받아들이면서 사찰음식이 전파되고 발전되기 시작합니다.
사찰음식을 통한 채식의 발달은 한국전통음식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약밥, 약과, 김치류, 나물류 및 각종 부각류 뿐 아니라 김, 미역, 다시마와 같은 해조류 식용의 발달은 당시에도 그 명성이 국내를 넘어 이웃나라까지 자자했습니다. 원나라의 시인 양윤부(楊允孚)는 “고려의 맛좋은 상치를 되읊거니와 산에 나는 새막나물이며 줄나물까지 사들여온다”고 그의 시를 통해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나라 사찰음식의 특징은 유제품을 제외한 모든 동물성식품을 금하고 있는데, 동물성 식품, 즉 육식을 금하는 이유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불교적 자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육식을 금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시 여기는 것은 조리 시 갖추어야 하는 삼덕(三德)인데, 삼덕은 사찰음식을 조리함에 있어 지켜야 하는 세가지 원칙을 말합니다.
삼덕의 처음은 청정(淸淨)입니다. 인공조미료나 방부제가 깃들지 않은 청정한 채소로 만든 맛깔스러운 맛의 깨끗함을 말합니다. 이는 육식은 물론이고 젓갈이나 파, 마늘, 달래, 부추, 홍거 등 향이 강한 ‘오신채(매운맛을 내는 다섯가지 채소)’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신채의 약리적 특성상 선정수행을 방해하는 부분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음식의 맛을 더해주는 향신료의 특성상 ‘맛’에 대한 작은 탐착이라도 일어나 수행에 방해가 될 수 있음을 경계하려 금하고 있습니다. 풍족하고 육식 중심인 서구식 식생활이 성인병 발생률 증가 등의 문제로 지적됨에 따라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늘어 채식 위주의 자연식, 슬로우 푸드, 웰빙 푸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며, 채식으로 식생활을 변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식생활에 대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대안으로 사찰음식을 제안하는 이유는 삼덕의 두 번째, 유연(柔軟)입니다. 수행에 열중하는 스님들의 위장에 부담이 가지 않도록 부드럽고 담백하게 조리하며, 사찰음식은 대표적인 채식음식으로 식물성 식품을 다양하게 배합하여 풍부한 섬유소와 불포화지방산을 제공하는 등 영양불균형을 바로잡아 줄 건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여법(如法)입니다. 이는 조리함에 있어 부모가 자식에게 향하는 마음과 같이 무한한 애정과 기쁨을 가지고 음식을 대해야 함입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끼니를 거르거나 패스트푸드로 간단히 먹는 것, 배고픔만 해결하는 것, 아무거나 편의대로 먹는 요즘에는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음식을 섭취하는 일을 ‘떼우다’는 말로 가벼이 넘겨버리기도 합니다. 이전과 같이 음식에 대한 소중함과 그것을 먹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깃든 우리 음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