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인삼은 몸에 열 올리 지 않는다. 신진대사를 촉진한다”
“인삼만 먹으면 몸에 열이 난다” 거나 “열이 많은 체질이라 인삼은 내 몸에 맞지 않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삼계탕을 먹을때 인삼을 빼놓는 사람도 있다. 혹자는 “미국과 캐나다 등북미지역에서 생산되는 화기삼은 몸의 열을 내리는 데 비해, 우리 민족의 영약인 고려인삼은 열이 나게 해 동남아시아 등 더운 지방사람들이 먹으면 해롭다”고 까지 말한다. 소위 고려인삼의 ‘승열(乘熱) 작용’이라 일컬어지는 이 말들은 과연 사실일까.
천연물과학과 생약 분야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서울대 약대 한용남 명예교수(이학박사)는과학적 임상실험을 통해 승열 작용의 실체를 밝혀냈다. 7년간 이어진 이 실험의 결론부터 말하면 “고려 인삼이든 화기삼이든 인삼을 먹었을 때 체온의 변화는 없으며, 사람들은 단지 주관적인 열감을 느낄뿐” 이라는것. “이는 우리가 밥을먹으면 몸아 따뜻해지고 든든한 느낌을 받는 것과 다르지 않다” 는 한박사의 설명이다.
또한 “이 느낌, 즉 열감은 인삼으로 인한 신진대사 활성화에 의한 것으로, 이는 인삼에 대한 임상실험 결과, 체온은 그대로인 채 혈류량과 혈류속도만 증가한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즉, 인삼의 승열 작용은 바로 인삼의 효능을 나타내는 지표로, 거꾸로 ‘승열 작용이 없으면 인삼이 아니다’ 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한 박사는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승열’이라는 말대신, 몸의 전체적인 기운과 힘을 높인다는 뜻의 ‘승기(乘氣)’, ‘승력(乘力)’ 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더 적당하다고 설명한다. 더욱이 고려인삼은 화기삼에 비해 인체의 대사작용을 더 활발히 촉진하며, 화기삼은 고용량을 섭취할 경우 이런 작용이 오히려 급격히 떨어진다는 점도 밝혀냈다.
고려인삼이 화기삼보다 효능 면에서 월등하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따라서 ‘인삼만 먹으면 몸에 열이 난다’거나 ‘열이 많은 체질은 따로있다’, 또는 ‘더운 지역에서는 해롭다’는 말은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 명품 약초 깎아 내리려는 업자들의 입방아
한 박사는 이런 승열 작용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연구를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지속했다. 2004년까지는 정부지원을 받았고, 2005~2008년에는 자비를 들여 연구를 계속했다. 고려 인삼에 대한 그의 열정을 보여주는 대목. 한 박사는 이 실험을 위해 술, 담배를 하지 않는 20~21세의 건강한 남성(평균 체중, 65~70kg) 88명을 모았다.
다른 질환이 있는 사람과 월경으로 신체 조건에 영향을 받는 여성은 실험의 정확성을 위해 제외됐다. 실험은 이들에게 고려인삼과 화기삼의 백삼 분말을 각각 2.25g, 4.5g, 9.0g(하루 권장량2〜6g)을 먹게 하고 1시간 후 부터 30분 간격으로 6시간 동안 혈류량, 혈류속도, 맥박, 혈압, 체온 등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사람이 생각을 하거나 일을 할때는 중추신경계의 교감신경이 각 신경과 근육, 혈관 등에 명령을 내린다. 그럼 아드레날린 수용체가 각 신호체계를 통해 신체 각부에 혈류량을 늘리고 혈류속도를 빠르게 하라고 지시한다. 각근육과 신경, 혈관이 활발히 움직이려면 해당 부분에 혈액이 활발히 공급돼야 한다. 따라서 인삼을 먹은 후 혈류량과 혈류속도를 측정하면 인체의 대사순환이 얼마나 활발하게 일어나는지를 알수 있다. 실제 체온이 올라가는지 여부는 직접 체온을 측정해보면 된다.
한 박사는 이 실험을 하면서 “술, 담배를 하지 않는 건강한 피험자를 모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빈속에 인삼만 먹게 한 후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뷔페로 데려가 밥을 먹이느라 비용도 많이 들었다” 며 웃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친 실험 결과, 고려인삼과 화기삼 모두 체온 변화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정상 체온에서 0.1도와 0.3도의 진폭 사이를 오가는 결과를 보인 것이다.
오히려 두 인삼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고용량 일수록 정상체온보다 체온이 떨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화기삼은 고용량인 9g을 먹었을 때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체온이 장상 체온 아래로 떨어지는 폭이 컸다. 한박사는 이에 대해 “워낙 소폭의 오르내림 이어서 두가지 인삼 모두 체온 변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혈류량, 혈류속도는 고려인삼과 화기삼 모두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지만 고려 인삼의 증가폭이 더 크게 나타났다. 그만큼 신진대사가 더 잘 된다는 의미다. 화기삼은 고용량인 9g을 섭취한 그룹에서 6시간 가까이 지나자 혈류량과 혈류속도가 크게 떨어지는 현상이 확인 됐다. 이 밖에 맥박과 혈압은 의미 있는 변화가 없었다. 인삼에 대한 연구가 속속 진행되면서 고혈압 환자도 인삼을 섭취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고려인삼을 먹으면 몸에 열이 난다’는 헛된 정보는 어디서 온 것일까. 한 박사는 이에 대해 솔깃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 세계의 인삼이 모이는곳은홍콩시장이다. 미국과 캐나다등 북미권의 화기삼은 기업형, 공장형으로 재배되기 때문에 원가가 턱없이 싸다. 반면 고려인삼은 모든공정이 사람손에 의해 이뤄져 인건비가 많이 든다.
이 때문에 화기삼의 가격은 고려인삼의 10~20%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홍콩시장에서는 고려인삼이 희귀하고 비싸 명품 대접을 받는다. 약효에서도 비교가 안되다 보니, 업자들은 중국 고문헌을 이용해 ‘고려인삼은 열이 나기 때문에 더운 체질의 사람이나 더운 지방 사람들은 고려인삼이 맞지 않는다’는 말을 만들어 냈다.
고대 중국의 의학문헌에 ‘고려 인삼은 온(溫)하고 화기삼과 전찰삼(중국삼)은 량(凉)하다’는 말이 나온다. ‘온’이나 ‘량’은 약물의 성격이나 성질, 즉 약성(藥性)을 가리키는 말로, 달다 씁쓸하다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데, 화기삼을 생산하는 북미 영어권 사람들은 이를 ‘따뜻하다’는 뜻의 영어 단어인 웜(warm)과 ‘서늘하다’는 뜻의 콜드(cold)로 번역했다.
업자들은 고려인삼의 약효를 깎아내리기 위해 이렇게 선전하지만, 실험으로 밝혀졌다 시피 이는 사실무근이다. 이런 잘못된 정보를 바로 잡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또 한편으론 세계무대에서 고려인삼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작업도 시급하다.
♣ 성분으로 밝혀 진 ‘승열’의 실체
고려인삼과 화기삼에 대한 고문헌의 언급은 현대과학에서도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온이나 량의 개념을 단순히 열을 올리느냐 내리느냐의 문제가 아닌, 한 박사의 실험에서 처럼 중추신경계에 두 가지 인삼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의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이는 두 인삼의 대표적 약리 성분인 사포닌의 성분 구성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포닌 성분은 화학구조의 특성에 따라 크게 중추신경계를 진작(進爵)시키는 PPT(R-otopanaxatriol)계열과 진정 시키는 PPD(Protopanaxadiol)계열로 구분하는데, 고려인삼에는 PPT계열의 대표격 사포닌 성분인 Rgl이 화기삼에 비해 50% 이상 많이 들어 있다.
이에 비해 화기삼에는 PPD계열의 대표격인 Rbl이 고려인삼보다 최소3-4배 더 많다. 더욱이 고려인삼에는 Rbl 23%, Rgl 19%, Re 15%, Rc 12%, Rb2 11% 등 인삼 사포닌의 주요 약효 성분이 골고루 들어 있는 반면, 화기삼(미국삼)은 Rbl 49%, Re 26%로 전체 사포닌 성분의 75%를 차지한다.
고려인삼에는 약리 성분이 골고루 분포해 있어 중추신경계에 대한 진작과 진정 작용이 적절히 조절되는 반면, 화기삼은 진정 작용을 하는 성분이 월등히 많은 셈 이다. 고려인삼이 함유한 각 성분은 중추신경 흥분 및 억제 작용, 단백질 합성 촉진, 부신피질 호르몬 분비촉진, 인슐린 유사 작용, 해독 작용, 항염증, 혈소판 응집 억제, 항암 작용 등 많은 효능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관련해 수많은 연구가 있었다.
한 박사는 “사포닌 성분 가운데 고려인삼에 많이 든 Rgl의 약성과 약효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이 약효는 중국인도 인정했다. 제10회 국제인삼심포지엄에서 중국 인삼 연구의 최고 석학인 장준텐 박사(베이징대 의대 중국의과학연구소)는 Rgl의 다양한 효과에 대해 극찬했다.
특히 그는 Rgl이 가지는 손상된 기억력의 회복과 인식 기능 향상에 주목했다. 두뇌 회전과 기억력 향상에 우리 고려인삼이 그만큼 좋다는 뜻이다” 라고 밝혔다. 한 박사는 지난 8월 서울대 약대 교수로 정년 퇴임한 후 한국 식물자원연구소 연구원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