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와인의 역사는 우선 로마제국 시대부터 시작된다. 1~4세기 프랑스는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프랑스 각지에 포도 재배가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서기 450 년경 게르만족의 민족 대이동으로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이민족들의 침입으로 포도밭이 황폐해졌다.
4~15세기에는 가톨릭 수도사들이 와인 제조 기술을 전수하여 주었고, 프랑스 부르고뉴와 보르도가 주요와인 생산지로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부르고뉴의 경우는 581년 브르공드(Burgondes)의 왕 공트랑이 수도원에 디종의 포도밭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브르공드 왕국이 부르고뉴 공국이 되면서 수도원에 포도원을 하사하는 관습이 지속되었다. 이때 알록스(Aloxe), 생트니(Santenay), 샤산느(Chassagne), 뫼르소(Meursault) 등이 수도원 소유가 되었다.
영성체에 필요한 와인 생산을 넘어 와인이 교회의 치부 수단이 되었는데 중세 말기에는 부르고뉴 포도밭 면적이 증대되고 재배 품종이 증가하였다. 이때의 일련의 사건으로 1395년 부르고뉴 대공인 필립이 가메 품종의 추방을 명령한 것이다.
한편 이때부터 부르고뉴 와인온 프랑스 왕실의 총애를 받기 시작했다. 보르도의 경우는 1152년 아키텐의 공주인 알리에노르(Alienor) 공주가 후일 영국 왕이 된 앙리 폴란타지네트와 결흔을 하였다.
이때부터 보르도가 300년간 영국령이 되었고 보르도와 영국의 와인 무역이 번성하게 되었다. 1453년 프랑스의 100년 전쟁 승리로 보르도는 다시 프랑스령이 되었다.
18세기에 들어서 프랑스 혁명으로 교회 재산이 많은 포도원을 국가가 소유 국가에서 담보로 이용하게 되었다. 국가재산을 취득하는 여러 민간인이 부르고뉴의 포도밭을 분산 소유하게 되었다. 이것온 또한 보르도와 같은 거대 와이너리가 존재하지 않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18세기에는 프랑스 와인 산업이 도약하는 계기가 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보르도 와인 산업이 번창하게 되는데 보르도는 네덜란드, 독일, 아일랜드, 스칸디나비아와 무역을 하게 된다.
19세기에 둘어서면서 나폴레옹 전쟁(1797~1815년), 산업 혁명기를 거치게 되고 이때에 샴페인이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또한 1865년부터 1887년까지는 보르도 와인 전성기로 생산량이 증가하고 산업혁명으로 운송 통신 수단이 발달하며 자유로운 의식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네고시앙과 생산자들이 더욱 긴밀하게 하여 와인 판매 활성화를 가져왔다.
1855년 나폴레옹 3세의 명에 의해서 와인 등급 체계가 태동하게 되고 20세기에 들어서서는 보르도의 와인 생산자들이 와인 가격 하락 등 새로운 위기에 직면하여 1911년 보르도 와인 생산자들을 중심으로 원산지를 통제하는 법안제정을 계획하게 되었다.
결국 1935년 국립원산지 통제 명칭기구(INAO : Institut National des Appellations d’ Origine)를 만들게 되고 원산지를 비롯하여 진품임을 증명하는 보장제도 즉 포도 재배지역, 품종, 수확량, 알코올 도수, 재배 방법, 양조 방법까지 규정하게 되었다.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