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차림풍습은 음식을 그릇에 담아 수저와 함께 상우에 차리는 관습화된 방식으로서 식생활풍습의 중요한 내용을 이룬다. 지혜롭고 재능있는 우리 선조들은 인류발생의 첫시기부터 이 땅에서 살아오면서 오랜 식생활과정에 우리 민족에게 고유한 상차림방식을 창조하고 계승발전시켜왔다.
오랜 력사적과정을 거쳐 관습화되고 계승발전하여온 전통적인 우리 나라의 상차림방식은 지방과 계층에 따라 일정한 차이를 가지고있지만 일반적으로 일상음식상차림과 의례상차림, 궁중상차림으로 갈라볼수 있다. 우선 우리 나라의 상차림방식에는 일상음식상차림이 있다.
일상음식상차림은 아침, 점심, 저녁 등 끼니때마다 일상적으로 음식물을 차리는 상차림을 말한다. 일상음식상차림은 밥을 주식으로 한 밥상차림과 국수, 죽, 떡, 온반 등 별식을 주식으로 한상차림으로 구분할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밥이 주식이였던것만큼 일상음식상 차림에서도 밥상차림이 기본상차림이였다. 밥상은 일명 반상 또는 진지상이라고 불렀다. 밥상차림에는 독상차림과 겸상차림, 두리반차림이 있었다. 독상차림은 한사람이 먹을 음식을 한상에 차리는 상차림이다.
독상은 존대하는 뜻으로 주로 가장이나 손님에게 차리였다. 독상을 차릴 때 밥그릇은 상의 왼쪽에, 국그릇은 오른쪽에 그리고 간장, 초장, 고추장 종지들은 상한가운데에 놓고 그뒤로 김치보시기, 왼편에는 된장찌개나 젓국찌개그릇, 그 오른편에는 나물접시, 깍두기그릇같은것을 놓고 그밖에 더 놓을 부식물이 있으면 그 주변으로 질서있게 놓은 다음 숟가락과 저가락을 앞면, 오른쪽에 놓았다.
독상차림에서는 대체로 물이 있는 음식을 담은 그릇은 오른손가까이에 놓고 물기가 비교적 적은 마른 음식을 담은 그릇은 상왼쪽에 놓았다가 식사가 끝날무렵에는 대접에 담은 숭늉을 들여왔다. 반상차림에는 3첩, 5첩, 7첩, 9첩 등 일정한 격식에 따라 상을 차리는 풍습이 있었다.
첩이란 접시를 가리키는데 접시에 담은 부식물의 가지수에 따라 달리 불렀다. 세가지면 3첩반상, 다섯가지면 5첩반상, 일곱가지면 7첩반상, 아홉가지면 9첩반상이라고 하였다. 겸상차림은 두사람이상, 대체로 네사람까지 함께 먹을수 있게 차린 음식상이다.
두사람이 함께 먹을수 있게 차린 상을《겸상》혹은《두겸상》이라고 하며 세사람이 함께 먹을수있게 차린 상을 세겸상》, 네사람에 해당한 상을 네겸상》이라고 하였다. 겸상은 가까운 친척이나 다정한 친구사이에 주로 쓰이였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독상과 겸상을 구분하여 쓰기도 하였다.
사회적지위가 높고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독상을, 젊고 사회적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는 겸상을 차려놓았다. 두리반차림은 한상에 여러명이 함께 먹을수 있게 차린 상차림이다.
두리반에 음식을 차릴 때 밥과 국만은 각기 따로 담아 차리고 그밖의 찬류는 보시기와 접시에 함께 담아 차렸으며 농가들에서는 국그릇만 각기 따로 놓고 밥은 큰 그릇에 담아 상가운데에 놓고 각기 떠먹는 관습도 있었다.
지난날 우리 인민은 흔히 남자들에게는 독상이 아니면 겸상으로 따로 상을 차리고 나머지 가족성원들, 주로 녀성들과 아이들에게는 두리반에 차리였다.
별식을 주식으로 한 상차림에는 국수상차림, 죽상차림, 떡상차림, 지짐상차림, 국밥상차림, 온반상차림 등이 있었는데 이때의 음식상은 반상차림과는 달리 일반적으로 부식물종류가 많지 않았다.
다음으로 우리 나라의 상차림풍습에는 의례상차림이 있다. 의례상차림은 경사스러운 날을 기념하거나 사망일을 맞으며 특별히 차리는 음식상이다. 가정에서 부모들은 어린이가 나서 1년이 되면 첫 생일을 축하하여 돌잔치상을, 커서 시집장가를 가게 되면 결혼잔치상을 차려주었다.
한편 성장한 자식들은 자기를 낳아 키워준 부모들의 사랑과 로고에 대하여 잊지 않고 부모의 나이 60살이 되면 환갑상을, 70살에는 생일 일흔돐상을 차렸다. 부모가 돌아간후에는 살아있을 때 다하지 못한 효성의 표시로 제상을 차리였다.
의례상차림은 일상음식상차림과 다른 특성이 있었다. 잔치상이나 환갑상은 일정한 규범에 따라 될수록 여러가지 음식을 많이 차려놓았다. 혼례상은 일반적으로 맨 앞줄에 과일류, 둘째줄과 셋째줄에 떡, 약과, 포, 삶은 고기, 전, 구이 등 각종 음식을 높이 고여 차리였다.
같은 의례상이지만 환갑상은 잔치상보다 일반적으로 더 높이 고이였다. 이것은 부모들에 대한 효성이 음식을 고이는 높이에 비례한다고 생각하였기때문이였다. 이 상들은 다 큰상 또는 《바라보는 상》이라고 불렀는데 기쁜 날에 차리는 잔치상이므로 보기 좋으면서도 화려하게 차리는데 커다란 관심을 돌렸다.
제상차림에서는 음식준비에서부터 잔치나 환갑 음식준비와 차이가 있었다. 제상은 죽은 사람을 추모하여 차리는 의례상이다.
제사때 쓰이는 그릇들은 일반적으로 제사의 정숙한 분위기에 맞게 모양이 단정하고 장식이 극히 소박하였으며 목이 길거나 밑굽이 높았다. 제상차림은 음식을 제기에 담아 넉줄 또는 다섯줄로 차려놓았다.
주안상은 술과 안주를 차려놓는 상인데 반가운 손님이 왔거나 가정과 나라의 경사때 특별히 차리는것이였다. 주안상은 외상으로부터 점차 4~6명이 앉을수 있는 교자상으로 변하였다. 주안상차림은 사람수에 따라 종류와 량에서 차이가 있었으나 일반적으로 여러가지 음식을 많이 차리는것이 특징이였다.
그리고 음식도 술안주로 쓸 반찬류를 위주로 차리였으며 떡이나 과일류는 적게 놓았다. 주안상은 차림에서도 격식이 없이 음식물을 먹기 편리하게 놓았다.
다음으로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상차림방식에는 궁중상차림이 있었다. 궁중상차림에는 왕과 왕비가 끼니마다 받는 밥상(수라상)과 다과상,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왕이 특별히 받는 어상, 명절때와 왕족의 생일날 그리고 외국사신을 맞이하여 차리는 진연상 등이 있었다.
왕이 받는 밥상은 일상음식상보다 상우에 차려놓는 반찬 가지수가 가장 많은 12첩이였다. (량반들과 부자들은 7첩, 9첩까지 차릴수 있었다.) 어상이나 진연상은 일반의례상차림보다 상에 차려놓은 음식 가지수가 더 많고 호화로왔으며 단번에 다종다양한 음식을 푸짐하게 차리였다.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우리 나라의 상차림풍습은 우리 인민의 고유한 식생활관습과 독특한 온돌생활조건, 훌륭한 식사례의범절, 상, 그릇, 수저의 특성과 그 리용방법 등에 맞게 이루어진것으로서 그의 고유한 특성이 뚜렷하다.
그 특성은 첫째로, 음식을 상우에 차려놓고 먹는 시원이 매우 오래며 상차림종류가 많은것이다. 음식을 상우에 차려놓고 먹는 시원이 매우 오래다는것은 이미 고대유적에서 후세의 독상과 비슷한 크기의 나무밥상이 발굴된 사실을 놓고도 잘 알수 있다.
우리 나라의 상차림방식은 창조된 시원이 오랠뿐아니라 그 종류가 대단히 많다. 밥, 죽, 떡, 국수, 지짐 등 주식물 구성에 따라 상차림방식이 서로 다르며 특별히 차리는 음식상은 그 종류가 더욱 많았다.
둘째로, 상차림이 우리 나라의 주택생활조건에 적응하게 이룩된것이다. 다른 나라의 상차림을 보면 대체로 의자에 앉아 식사할수 있게 높은 탁상우에 음식을 차려놓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오랜 옛날부터 온돌방으로 된 주택생활조건에 맞게 낮은 밥상에 음식을 차리였다.
셋째로, 음식상에 여러가지 음식의 거의 전부와 그에 따르는 양념을 한꺼번에 상우에 차려낸것이다. 이러한 상차림풍습은 식사할 때 사람들이 자기의 기호와 식성에 따라 이것저것 마음대로 먹을수 있게 하려는데서 생겨난 관습이였다.
그리고 음식종류는 많으나 량은 한사람이 먹을 정도로 맞춤하게 차린것이다. 이것은 음식을 각기 딴 그릇에 담아놓고 먹었던데로부터 생겨난 독특한 관습이였다. 상을 차릴 때 음식그릇과 수저를 식사하는데 편리하게 놓았다.
밥그릇은 언제나 상의 앞줄 중간에서 왼쪽에, 국그릇은 오른쪽에, 국물이 있는 반찬그릇은 가까이에, 마른 반찬그릇은 멀리에, 양념그릇은 누구나 다 리용하는것이므로 상의 가운데에, 수저는 식사하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편리하게 오른쪽에 놓는것이 관습화되였다.
넷째로, 음식상을 화려하게 장식한것이다. 떡우에 여러가지 색으로 된 꽃가지를 만들어 꽂아놓았으며 떡자체를 꽃모양으로 화려하게 조형화하여 높이 고여놓기도 하였다.
다섯째로, 예로부터 로인들과 웃사람들을 존경하고 성심성의로 공대하는 례절밝은 우리 인민의 미풍량속이 높이 발양된것이다. 그것은 늙은이들과 웃어른들에게는 겸상보다 독상을 차리며 조금이라도 좋은 음식을 먼저 차려 대접한데서 찾아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