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체들의 요람, 강(江)
섬진강은 전라도 동부지역을 남류하여 경상남도와 전라남도의 경계에서 남해로 흘러가는 강이다. 낙동강은 강원도 남부지역과 경상도의 중앙에서 남류하여 남해로 흘러들어가는 강으로 북한의 압록강과 두만강에 이어 우리나라 안에서는 가장 긴 강이다.
섬진강과 낙동강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많은 모래가 퇴적되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흔히 모래밭하면 사막을 연상하게 되어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불모지라고 생각하지만, 물속의 모래는 불모지도 아니요, 오히려 다른 생명체들의 요람이다.
이 모랫속에 사는 조그만 조개들이 낙동강 하구와 섬진강 하구의 명물이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재첩이다. 재첩을 삶아 우려낸 재첩국은 경상도 지방의 토속음식인데, 경상도 말로 ‘재칩국’ 혹은 ‘재치국’이라고 한다.
국의 주재료인 재첩은 원래 부산의 낙동강 하류인 하단, 김해, 명지, 엄궁 등의 강가와 수영강 인근에서 흔히 채취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산의 유명한 음식이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버려 타 지역의 향토음식으로까지 여기게 되었다.
♣ 부산의 재첩국
우리가 먹는 부산의 재첩국의 역사는 19세기 때부터 그 유래를 명확히 살펴볼 수 있다. 19세기에 상업 활성화 과정 속에 행상에서 먹어야 할 싸고 간편한 먹거리로 재첩국이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20세기 초까지 재첩국은 간단히 허기를 채우거나 해장을 하기에 좋은 서민 음식이었다.
재첩이 많던 낙동강 인근이 개발되면서 이제는 채취할 재첩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재첩을 파는 음식점이나 행상인들도 거의 사라져 낙동강 인근 강서구 삼락동 지역만 4곳 정도의 재첩국 전문점이 모여 재첩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 곳곳에 옛날 재첩, 섬진강(하동) 재첩, 할매 재첩 등의 이름으로 재첩국을 팔고 있는 가게들이 아직 적지 않게 존재하고, 재래시장마다 재첩국을 팔고 있는 가게도 많이 눈에 띈다. 부산의 재첩은 사라졌으나 아직도 부산 사람에게 특별한 강만이 줄 수 있는 음식, 재첩의 맛은 잊혀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 강의 변화와 오염으로 사라지다
예로부터 부산의 낙동강과 수영강은 한강, 두만강, 압록강처럼 강을 중심으로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삶이 이루어져 온 곳이다.
낙동강과 수영강은 강의 하류가 바다와 이어져 다양한 생물들이 자랄 수 있었고, 풍부한 수산자원을 우리에게 제공해 왔으며, 식수와 농업용수까지 인간의 문명을 유지하는 생명수(生命水)의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러나 1962년의 국가경제개발 5개년계획에 의해 이 일대가 우리나라의 주요한 산업단지로 변화함에 따라 공장이 들어서고 이들 공장에서 배출되는 오염물질이 본류로 흘러 들어가 낙동강의 오염이 가중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부산의 강에서 채집한 재첩을 먹기가 힘들어졌다.
지금도 부산 곳곳에 그나마 재첩국집이 있다지만, 섬진강 유역의 하동에서 채집한 재첩국을 재료로 팔고 있고 그 섬진강마저도 오염되고 우리 재첩의 종이 사라지고 있어, 중국에서 들여온 재첩을 먹게까지 되었다.
불과 수년 전까지도 강서구 쪽에서는 아침이면 동네가 떠나 갈 듯이 ‘재치국(재첩국) 사이소!’를 외치던 부산 아지매(아주머니)들이 있었고, 아직도 재래시장에 재첩국을 파는 곳도 많지만 우리 지역에서 생산된 먹거리로서의 재첩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이다.
땅에서 자라난 여린 녹차 잎과 조그만 커피 열매가 물에서 우러나 진한 차의 맛을 전하는 것처럼 재첩도 커피 알갱이 만한것을 모아 끓여내면 깊고 담백한 맛을 낸다.
손톱만한 조개에서 발라 먹을 살이 없다하여, 째마리*라고도 불리지만, 삶아 우려내고 그것을 천으로 걸러 낸 국물 맛을 보면 진한 강의 맛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재첩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모래 변에만 서식하기에 해감을 잘하지 못하고, 껍질을 벗기지 않고 통째 끓여 먹어서 과거에는 모래알이 씹히기도 했다. 지금은 그러한 음식을 먹지도 않겠지만, 예전에는 모래알이 씹히는 맛조차 당연한 것으로 즐겨왔다.
이제 모래 한 톨을 씹는 것도 불편해진 우리의 입맛은 정말 정갈하고 깨끗한 음식을 먹어 왔기에 생긴 결과일까? 오히려 요즘은 화학조미료나 가공된 음식이 몇 알 씹히는 모래알보다도 우리의 몸을 더 헤치는 것이 될 것이다.
투박하게 조리하고 손질해 먹던 지역의 먹거리의 정취가 사라진 요즘의 음식들에서 우리는 모래알보다 더한 가공음식의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싸면서도 기름지고 배부른 음식을 찾게 되는 도시 서민들의 입맛이 모래 몇 알을 씹는 것보다 훨씬 나쁜 패스트푸드들에 중독되고 있다.
재첩국은 이 패스트푸드만큼이나 누구나 손쉽게 먹던 가난한 서민들의 음식이었으나 이제는 웰빙음식이 되어 부산 곳곳에서 한 번쯤 즐기는 도시의 음식으로 변모되어 가고있다.
강이 주던 풍족한 선물인 재첩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해역*을 가지고 있던 부산의 지형에서 생산될 수 있던 축복의 음식이었으나 이제 이러한 맛을 부산의 지형도 안에서 생각하는 것은 과거의 향수가 되어 버렸다.
지금도 낙동강의 강물들은 여전히 바다로 흐르고 있고 그러한 지형 안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재첩은 부산만이 지닌 특별한 지형과 그 안의 맛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던 오래된 유물과도 같았다.
지금은 부산의 지형을 통해 그러한 유물을 간직했었던 적이 있었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낙동강 재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옛날 이야기가 되었지만 강의 음식처럼 주인이 없고 누구나 채취할 수 있는 공동체의 음식이 없어진 것을 옛날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그것이 점점 서민들이 살아가고 즐길 공동체의 공간이 없어지는 것과 다르지 않아 재첩이 사라진 것은 단순히 생태계의 변화로만 보이지 않는다. 강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식수인 생명의 젖줄이기도 하거니와, 더 나은 공동체의 삶을 복원하도록 도와 줄 우리의 희망인 것이다.
*째마리
사람이나 물건 가운데서 가장 못난 찌꺼기를 이르던 경상도 방언
*기수해역과 재첩의 생태
담수(민물)와 해수(바닷물)가 섞이는 지역으로 강의 끝 부분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을 의미한다. 재첩은 이런 기수해역 중에서도 모래가 퇴적되는 곳에서 잘 자라는 데, 낙동강 하구나 섬진강 하구가 모래가 퇴적되는 지형이라 주로 이곳에서 우리나라의 모든 재첩이 생산되었다.
▸ 재첩회
재첩을 끓는 물에 데쳐 차게 식힌 후에 초고추장 양념과 겨자 장에 곁들여 먹는 요리
▸ 재첩찜
재첩알과 조개만 넣어 들깨, 찹쌀가루, 고춧가루를 뿌려 만든 걸쭉한 찜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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